Hindforemost
전공 | 2009/01/17 18:19
6. 기억은 언제나 역행한다. 나를 농락한 네가 생각나면, 다시금 내가 죄를 지었던 누군가가, 그리고 다시 내게 죄를 지었던 누군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역행한다.
5. 2009년 1월, 시험장에서 나오자, XX은행에서 설치한 판매대가 보였다. 이상한 종이를 나누어준다. 닥터 클럽 신용대출, 최저 6.xx%, 최대 4억 블라블라. 직원들이 들뜬 학생들을 막 붙잡으며 얘기 좀 들어보고 가라며 꼬신다. '사(師)'자의 의미는, 고래 그리스로부터 현대의 모든 사회에 이르기까지, 혹 SF 소설의 미래상에 이르기까지, 어떤 - '신분'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합격증을 받는 그 순간부터, 혹 합격증을 받기 전부터 이미, 풍경은 변해간다. 숭고한 직업적 양심, 뭐 이런 복잡한 얘기와 관계없이.
4. 6년 전, 어리버리한 신입생으로 한의대에 입학했다. OT 때 선배들이 한의대에 왜 왔냐고 물어본다. 다들 "한의학에 평소 관심이 많았고 블라블라"하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도 얼결에 똑같이 대답했다. 그로부터 수 년 후 학생회로서 OT에 참가했을 때, 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신입생 때, 선배들이 OT때 한의대 왜 왔냐고들 물어보는데 정말 X 같더라, 솔직히 적당히 배치표 보고 선택한 거지 무슨 평소에 한의학에 관심이 많고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고 블라블라 하는 소리들을 기대하냐고." 현실적으로, 한의사로서 우리의 상(像)은 입학 전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고, 실습을 하고, 의료봉사를 하면서 점차 형성되어간다. 그 롤 모델은 진짜 의학자에서부터 뭔가 의심쩍은 구석이 있는 사기꾼까지 다양하지만.
3. 고교 시절, 대수능 모의고사를 보기 시작하면서, 지망학과를 적어내야 했다. 지망 학과를 적어내면 합격 가능성을 알려주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교실 뒤에 붙어있는 배치표를 보았다. 적당히 내 점수에 맞는 학과를 찾았다. 공대? 중학교 때까지는 수학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젬병이란 게 드러났으니 패스다. 의대? 대학생들끼린 우리과 공부가 더 빡쎄다고 설왕설레가 오고가는 것 같지만, 고교생이 객관적으로 보기에 그 중에 제 1은 의대라. 다른 대학생들이 학점 싸움을 하는 동안 의대생은 유급 앞에서 생존 싸움을 하고 있으니. 고로 또 패스다. 또 자세히 보니, 음, 한의대란 게 있다. 기껏해야 오르비 따위의 럭셔리 고딩 놀이터에서 나오는 얘기긴 하지만 의대보다는 '덜 빡세단다'. 뭐 돈도 좀 덜 버는 것 같지만. 어쨌거나 한의대를 지망하기로 했다. 대수능 자체는 망쳤다고 생각했는데, 그 해 어렵게 나온 과목들에서 점수가 높게 나와 소위 '변표 대박(요즘 대수능에서는 나올 수 없는)'을 쳤다. 진학 시도때 한의대를 쓰겠다고 말하자, 선생님들은 이 점수로 한의대를 쓰는 건 도박이라고 했다. 그래서 못 붙으면 재수라도 하겠다고 떼(?)를 썼다. 근데 단방에 합격했다. 헐퀴, 이러니까 다들 강남 8학군이니 하는 좋은 고등학교에 가려고 하지.
2. 초등학교 때는 내가 전형적인 과학형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무슨무슨 클럽에서 붕어 해부 따위를 했다. 그러다가, 일기 쓰기 귀찮아서 어느날 일기에 시랍시고 나부랭이 하나를 적어서 냈다. 선생님이 칭찬을 해 주셨다. 그래서 문예에 관심이 생겼다. 고 1때까지도 그 예술(藝術)에 대한 관심은 계속 이어져갔는데, 심지어 고 1때는 지망학과에 예능 계열 쪽을 적어 내곤 했다. (물론 담임 선생님의 급 어두워지는 표정을 보아야 했다.) 문학회에서 시작(詩作)을 공부했고, 만화가에게선 만화 그리기를 공부했고, 음악 노트를 사다놓고 화성(和聲)을 공부했다. 물론, 그 어느것도 제대로 배운 것이 없다. 함량 미달의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 그저 낙서일 뿐이고, 진짜 예술까지 가기엔 사람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너무 길다. 물론 돈을 무척 벌기 힘든 직종임에도 확연하다. 문예가들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찾아봤더니, 글을 쓰는 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문예가들이 열 명 남짓이라는 얘기가 들렸다. 그래서 관뒀다. <새벽 내리는 길>, <십자가 보이는 언덕으로부터> 같은 '시 나부랭이'가 그때 쓰여졌고, 이젠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Start!> <진심> 따위의 멜로디들이 그때 만들어졌다.
1.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그러니까 1990년대 초중반 즈음, 세상은 바야흐로 IT 버블을 바로 목전에 두고 있었다.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세대가 바뀌고 있었고, 이메일이나 BBS, 하이퍼텍스트 같은 새로운 기술들에 눈을 떴다. 그 기술의 함의에 대해 잘 알 리가 없는 초등학생에게도 인터넷 산업은 기회의 땅으로 보였고, 나의 장래희망은 처음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나중에는 웹 디자이너로 바뀌었다. (여담이지만 그때 '부모님이 원하는 아이의 직업'란에는 늘 '변호사'가 쓰여져 있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1997년 즈음, IT 산업은 외형적으로 급속히 팽창했다. 시쳇말로 '개나 소나' IT 산업으로 뛰어들었다. 중학생 따위가 IT 버블을 예측할 수 있었겠냐마는, 어쨌든 그 몇년 새 세상은 너무나 많이 바뀌었고, 사회에 나가려면 앞으로도 10년이나 남은 이 중학생에게 인터넷은 더이상 기회의 땅이 아니었다. 그때 따 놓았던 정보기기운용기능사니 정보처리기능사니 하는 자격들은 그저 웹 버블 시대에 휘말린 한 중학생의 훈장으로 남게 되었다. 그 중학생은 인터넷 업계의 황금기를 바라보면서 오히려 "컴퓨터 따위론 돈을 못 버는 시대가 곧 온다"며 선각자인 척 잘난 척을 했는데, 그 치기어린 예측은 놀랍게도 얼마 안 돼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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